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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이야기

스페인의 경제 : 1898년~1975년 까지

by -*♬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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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경제 : 1898년~1975년 까지

 

<1898~1920 >

 

20세기가 시작했지만 스페인의 경제는 여전히 농경 위주인데다 도시화는 미진했다. 산업 기반은 카스티야의 직물 공장이 전부였고 바스크 지방의 실용 작물을 제외하면 별다를 것이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 이후에도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의 두 자치 도시인 비스카야, 구이푸스코아만이 농경 생산량보다 산업 생산량이 높았다. 농업 생산량은 적자일 수 밖에 없었던 뒤떨어진 농경 기술과 관개 시스템 구축의 미비, 농촌 지방의 신뢰할만한 농업 기반 시설 부족, 낡은 방식의 농경지 임차 방식 등으로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생산성이 떨어졌다. 기초 산업 뿐 아니라 금융업계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뎌 있었다. 스페인 은행은 개인 소유였고 공공의 역할을 조폐 발행과 연방정부의 활동 출자 목적 등으로 극히 제한되었다. 더군다나 연방 정부와 왕정은 스스로의 역할을 영토 보전과 사법 판단을 통한 정의, 사회질서 구현 등에만 기능하고 있어 국도, 교육, 복지 등을 빼고는 국가 경제를 지탱할만한 공공 서비스가 부재했다

 

<프리모 데 리베라 > 1923~1930

 

귀족이었던 미구엘 프리모 데 리베라는 왕의 임명 하에 총리가 되었고 7년 동안 의회를 해산하여 1930년까지 군부의 동의 하에 정치 권력을 휘두른다.

 

보호주의와 국가 통제 경제 체계는 일시적인 경제 회복을 일으켰다. 1930년 대위기를 거치면서 특수 이익집단이 정부에 제공하던 지원은 사라졌고 의회의 개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지성인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경제인들은 국체의 실패를 토대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앴고 경제 체계의 발전을 꾀하려는 시도는 군부의 지원을 얻기 위한 재정 부담을 야기했다. 군부의 지원이 없어지면서 미구엘은 왕에게도 더이상 신뢰 받을 수 없었고 권좌에서 물러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

 

 

<제 2 공화국> 1931~1939

 

스페인 공화정은 군주제를 대신함과 동시에 국제 경제의 위급함을 타개할 문제점도 겪어야 했다. 스페인 제2공화국 중 세 정부는 여러 개혁을 도모하는 데 실패하여 농지 개혁 등에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따라 총파업 등 노동자들의 대규모 분쟁 시위가 잦아지고 경제 발전은 후퇴했다.

 

스페인 내전 동안 분열은 두 개의 중앙집권화된 경제 체제를 야기했다. 전반적인 경제 효과는 전쟁 무기 산업에 집중되었다. 당시의 경제 성장은 개인 부분의 전쟁 관련 무기 거래에만 집중되었고 민간 경제가 구분되어 효과적인 성공을 이룰 수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1939~1975

 

 

스페인은 경제 상황을 타개해야 할 필요성이 컸다. 금과 외환보유고는 거의 말라버린 상태였고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황폐함은 모든 산업과 농경의 생산량 자체를 급감시켰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수입품에 의존해야 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모든 공급 자체를 어렵게 했다. 전후에도 스페인의 경제 상황은 원자재의 전세계적 공급 부족과 산업재 공급 부족으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러 유럽의 이웃 국가들도 재건 문제를 겪고 있었고 스페인 내전 당시 국민당의 편에 섰던 무솔리니나 히틀러 등의 국제적인 스페인 재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았다. 1939년 내전이 끝난 뒤 십년 동안 스페인의 경제는 심각한 침체기에 머물러 있었다.

 

추축국에 협력했다는 국제적 비아냥을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자급자족 경제 계획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경제 자립 정책은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내 경제 단체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도 있었다. 더군다나 1939년에서 1945년 사이 스페인의 군부 수장은 이베리아 반도의 연합국 침공을 두려워 했고 외국 무기에 대한 의존 자체를 줄여나가려 했다.

 

194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훨씬 뒤쳐져 있었으며 스페인 내전의 참혹한 결과와 자급 정책의 폐해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있어 더욱 결과가 재앙에 가까웠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았고 그나마 회복하려던 기미는 없어졌으며 몇 년 동안 성장 지표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1950년대 초반까지 GDP는 주요 서유럽 국가의 수준에 비교하면 40%에 불과했다. 경제 침체가 10년간 계속되면서 급격히 오르는 물가에 암시장이 활성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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