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쾌한 희곡의 분석 ] 리뷰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희곡을 분석적으로 읽는 테크닉-방법-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희곡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희곡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1년 전 희곡론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때는 희곡의 구성보다는 작가와 주제, 시대상의 영향 정도를 토론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공연을 목표로 하는 텍스트로서 희곡을 퍼즐처럼 해체하고 하나씩 뜯어보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대본을 무대에 올리는데 있어서 희곡의 구조적 특징과 가치를 이해하는 일을 명확히 해놓지 않는다면 이후의 노력도 헛수고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학교 워크샵을 보면 이러한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무작정 장면을 연습하고 그림을 만들어 가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연이 끝나고 한 교수님께서 ‘그 작품의 에피소드들이 왜 그 순서로 배열되었느냐?’ 고 물으셨는데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작가의 어떠한 의도가 들어간 것일 텐데, 우린 그것을 다만 각각의 에피소드를 표현하는데 바빴던 것 같다. 혹 누군가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팀원들이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학교 워크샵에서도 도외시되는 희곡분석단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의 문을 연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전체구성 - 형태, 방법론, 작업의 비법들
이 책은 형태, 방법론, 작업의 비법들이라는 세 파트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낸다.
1. 형태
먼저 형태부분에서는 희곡에서의 행동(어떠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이끌어내는 것)에 대해 정의하고, 희곡의 역동성을 찾기 위해 방아쇠(앞 사건)와 시체더미(이어지는 사건)를 찾을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도미노처럼 연결된 희곡의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꾸로 읽어보라’는 방법도 제시해준다. 앞에서부터 읽어도 막막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거꾸로 읽어보라고? 처음에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클로디어스의 죽음에서 시작해 거꾸로 찬찬히 대사를 되짚으며 앞 사건을 찾아내는 예시를 보니,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말이다. 「균형과 방해/장애와 갈등/모르는 게 약」 파트는 희곡을 쓸 때 도움을 많이 받은 파트이다. 모든 희곡은 균형상태에서 시작하고, 방해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며 균형상태로 돌아오며 끝을 맺는다는 원리는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지만 말로 정리하지는 못했던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하며 희곡을 읽고, 실제로 써보니 대부분의 희곡이 이러한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툰작가의 특기로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한다’는 부분은 내가 희곡을 쓰면서도 많이 부딪힌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설명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등장인물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를 명확히 알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위해 어떤 말을 사용하는 지를 보는 게 희곡을 제대로 읽는 법이라고 말한다.
2. 방법론
방법론에서는 먼저 ‘전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한 학교의 지정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가 나와 함께 연기를 배우던 아이와, 선생님과 같이 그 책을 읽고 이야기하던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희곡의 첫 장면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그 아이는 ‘솔직히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빼도 될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지만, 설마 셰익스피어가 아무 의미없이 그것을 썼을까? 나 또한 그때는 희곡 분석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지만 겨울이야기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중요성을 열변하기 시작했었다. 이 희곡의 시작은 시칠리아와 보헤미아의 신하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 그들의 대사로부터 희곡의 배경과, 앞으로 나올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현재 보헤미아의 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시칠리아에 와서 환대를 받고 있으며, 시칠리아 국왕과 보헤미아의 국왕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로, “두 분의 우정을 해코지 할 수 있는 어떤 악의도 변고도 이 세상에는 없을 테지요” 라는 대사로 앞으로 일어날 일의 복선까지 내포하고 있는 장면이니, 이 부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희곡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80%가 빈무대에서 공연될 수 있다고 할만큼 희곡의 첫 장면 혹은 장면의 대사에서 시공간이 드러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여기는 크럼포트가의 저택이고 지금은 음산하고 폭풍우 치는 2월의 밤인데요”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능력은 그러한 정보를 상황에 맞는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몇 개의 단어들로 압축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앞서 내가 고민했던 ‘설명하지않고 보여주기’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지」 파트를 읽으면서는 이번에 공연한 작품인 <Metamorphoses>가 자주 떠올랐다. 작가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해 <유리동물원>이나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갈매기>나 <들오리>를 읽을 때 그 동물에 대해 아는 것이 잘 없다면 그들에 대해 먼저 알아보라고 말했다. Metamorphoses는 사전적으로는 탈바꿈, 변형, 변태라는 뜻으로, 우리는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했었다. 이것은 고대 오비디우스가 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제목이 영어권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어떠한 형태의 변형, A에서 B로의 탈바꿈이라는 느낌이 컸다. 아폴로를 거부하며 다프네가 월계수나무로 변해버린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사실 작품은 내면의 변화도 포함하고 있다) 작품내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는 ‘물’. 바다가 되기도 하고 웅덩이가 되기도 하고, 풀장이 되기도 하며 물은 작품에서 내내 반복되는 이미지이다. 그럼 물이 이 작품에 이렇게 반복적으로 쓰인 이유는 무엇일까? 물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제를 보면 물은 어떠한 피할 수 없는 힘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의 신성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또 작품의 제목과 연관시켜보자면 물은 부피는 있지만 형태는 없는 것이라, 자유자재로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이미지는 가장 묵직한 기본 원칙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연상하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이다.
3. 작업의 비법들
제 3부 「작업의 비법들」 에서는 어떠한 요소들을 살펴보면 희곡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 짚으며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실 입시를 준비하던 때보다도 지금, 나는 희곡읽기와 멀어져있다. 그나마 읽는 것도 수업에 연관된 것들뿐이다. 이 책을 읽고 목표가 하나 생겼는데 바로 방학 동안 햄릿을 이 책에 주어진 방법대로 읽어보는 것이다. 방아쇠와 시체더미를 찾고 그 안에 주어진 이미지와 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며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의 저자가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기술적인 방법론이다. 그것을 실천하고 거기에다 영감과 상상력을 더하는 것은 연기자, 연출자, 디자이너 등 우리의 몫인 것이다. 햄릿 제대로 읽어보기. 이번 방학동안 꼭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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