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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연극에서의 자연주의 ] - 에밀졸라

by -*♬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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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무대는 정지 상태 혹은 불변의 상태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계속 진행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날의 작가들이 영원이 극문학을 결정할 수는 없다. 사회적, 문화적 진보는 저항할 수 없는 동력이다. 무대에 존재하는 조건은 언제나 다를 것이다. 소설은 그 형식상의 자유 덕분에 세기의 완벽한 도구로 남아있을 테지만, 무대는 세기를 따르고 세기의 행동을 완성할 것이다. 소설은 세세한 세부묘사를 살려 장황하게 분석하는 반면, 무대는 행동과 대사에 의해서 가능한 짧게 분석할 수 있다. 자연주의 소설에서는 묘사를 마음껏 길게 하는데, 이것은 묘사가 인물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그들 공식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요, 자연의 일부이며 그가 살고 있는 토양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기후와 국가와 계층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연극에서의 묘사는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발견된다. 무대장치가 소설에서의 묘사보다 더 정확하고 놀랄만한 지속적인 묘사이다. 17세기에는 자연이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고 인간은 그저 지적인 존재로 간주되었기에 무대장치는 모호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주의 운동은 무대 배경장치에 점점 더 완벽한 정확성을 가져왔다. 


*생물적 인간: 비극에서 교리와 논리를 따르는 인간인 형이상학적 인간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연극은 사상의 세계에 있었고 현실의 인간과 너무나 동떨어져있었다. 그 시작부터 수사와 교리아래에서 자연의 인간은 비밀리에 투쟁을 하며 구속에서 벗어나려했고 오랜 노력을 기울이나 마침내 자신을 내세웠다. 드라마라는 몸체의 리얼리티를 증대시키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자연의 인간을 가려내고, 자연의 인간을 대중에게 맡기는 임무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


*의상, 무대디자인, 화술: 현대의 의상은 외양이 초라하므로 서로 다른 계층과 직업의 다양한 의복을 사용하면 단조롭고 엄숙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극의 배경은 공장 안, 광산 내부, 시장, 철도역 등 현대 생활의 모든 장소들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밀한 재생이다. 연극에서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므로 의상이 정확해지만 무대장치도 그러해야한다. 배우들은 폭발적인 웅변에서 벗어나야 한다. 화술에서의 잘못은 ‘연극언어’라고 불리는 것에 있다. 이것은 진부한 상투어요, 무의미한 말이다. ‘연극언어’ 따위는 없으며 우리는 단순함, 즉 강세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는 정확한 구어를 향해 나아가야한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환경 속에서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 연극의 목표이다. 무대에서의 위대한 성공은 관습을 물리친 승리이다. 관습의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연극에서의 자연주의 Ⅰ


1. 고전주의 시대에는 비극이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엄격하고 편협하며 주제에 있어 한 치의 자유도 허락지 않았고 냉혹한 법률을 따랐다. 나중에 이 비극의 공식에 결함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국풍의 상황, 비개연성, 작위적인 통일성, 계속되는 웅변 등이다. 18C낭만주의 극이 꿈틀대기 시작하자, 연극에서 때론 삼일치가 지켜지지 않기도 했고, 폭력적인 절정 장면에 무대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낭만주의 극은 비극이 고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중세를 선택해서 기사와 귀부인들을 등장시켰다. 낭만주의는 기쁨과 고통은 나란히 간다고 주장하며 웃음과 눈물을 극 안에서 섞으려고 하였고, 비극적인 공식을 뒤집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것이 비극의 관습을 뒤엎는 과격한 투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낭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진실은 현실의 기괴한 과장이고 과도함으로 퇴락한 망상으로 보인다. 이제 낭만주의도 비극과 같이 오래되고 낡았다. 지금의 자유로운 토양에서 자라날 수 있는 것은 자연주의이다.  

2. 탐구와 분석의 운동이 일어나며 진화가 완성된 지금, 낭만주의는 더 이상 고전주의와 자연주의 사이의 연결 장치 외에 아무 것도 아님이 명백하다. 자연주의만이 우리의 사회적 욕구에 부응한다. 자연주의는 우리 세기의 표현이며 새로운 대변동이 우리의 민주적인 세계를 바꿀 때가 되어야 죽을 것이다. 

3. 역사극을 부활시키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극을 쓰는 무리들은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과 검술, 거대한 볼거리, 거짓의 연극 등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을 불신한다. 대중은 변하고 있다. 우리는 도처에서 보다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에의 욕구와 더불어 사고방식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공식들은 진실에서 어떤 본질, ‘시’를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이들은 대중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진실을 가리는 최상의 방법에 관해서만 논쟁을 일삼았다. 자연의 위조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주의 사상가들은 우리에게 진실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전의 이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시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주제를 머나먼 시간에 두면서 시작한다든가 인물을 특수화하는 대신 일반화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유기체의 철저한 분석을 통한, 근육과 두뇌가 자연스럽게 기능하는 인물이 아니다. 시는 도처에, 만물에, 심지어 과거와 추상보다 현재와 실제에 더 있다. 매 순간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시적이고 뛰어난 측면을 갖는다. 우리의 현재 상황을 예로 들어서 거기에 사람들이 살게 해보면 우리는 위대한 작품을 쓸 것이다. 낭만주의 극은 폐기되어야 한다. 또 자연주의 극이 존재해야한다면 오직 천재만이 그 극을 태어나게 할 수 있으므로 그를 기다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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